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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레타 "내가 이적했던 맨시티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추파충
2025-04-15 18:1


파블로 사발레타 인터뷰


- 왜 에스파뇰에서 맨시티로 이적했는지.


물론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싶어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맨시티와는 완전 다른 팀이었다. 난 대격변의 초창기부터 참여했다. 당시 훈련장은 아직 캐링턴에 있었다. 기자회견? 거기 끌려갈까봐 숨어다녔다. 기자회견장은 벽돌로 만든 간이시설 수준이었다. 엄청 추워서 특히 겨울에는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인프라도 그렇지만 축구적으로도 많이 달랐다. 우승에 대한 열망은 1도 없었고 FA컵, 칼링컵도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맨시티는 맨체스터의 에스파뇰이었다. 같은 도시 안에 괴물이 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축구적으로는 맨유와 엄청난 격차가 있었지만 그래도 열렬한 팬층이 있었고 중하위권이라는 클럽의 위치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처음 맨시티로 간다고 했을 때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맨시티로 간다고? 거기 가느니 에스파뇰에 남는 게 낫겠다. 축구적으로 더 나은 팀도 아니고, 진짜 바르셀로나를 떠나서 맨체스터로 가서 살자는 거야?" 물론 맞는 말이었지만, 난 프리미어 리그로 가고 싶었다.


- 이적 10일 후에 만수르가 인수했는데.


딱 10일 후에 그들이 인수했고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훈련 시설 개선이었다. 당시 헬스장은 간소했고 식당도 좁았다. 업무를 보는 사무실은 구장 내부에 있었다. 지금 시설과 비교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콤파니와 나는 스스로를 생존자들이라고 칭했다. 구단이 열악했던 시절부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맨시티는 60년대에는 꽤 잘나가던 팀이었지만 그 후로 한참 동안 우승하지 못했다. 그들은 만치니 감독과 중요한 선수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FA컵에서 스토크를 꺾고 우승했다. 그게 진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2012년 5월 13일 아구에로오오오오


내가 왜 대머리가 됐는지 아는가? 2010년에 에스파뇰에서 극적으로 잔류했고, 2년 뒤에 또 극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하느라 똥줄이 타서 그렇다.


만약 우리가 그 우승을 해내지 못했다면 선수, 감독, 구단 모두에게 큰 타격이 됐을 것이다. 최종전에 우승을 차지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다. 홈이었고 상대인 QPR은 강등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잔류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QPR 감독은 우리 감독이었던 마크 휴즈였다.


뭐 최종전이 안필드 원정 같은 경기였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경기는 진짜 대단한 각본이었다. 아직도 잉글랜드에 가면 언제나 그 장면이 어딘가에 나온다.


우리는 3월까지 맨유와 12점차까지 벌어져 있었고 우승이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맨유가 조금씩 승점을 까먹기 시작했고 맨체스터 더비에서 우리가 승리했다. 그렇게 우리가 자력 우승이 가능한 상황까지 왔고 계속 승리했다. 그래서 마지막은 쉬운 경기가 될 줄 알았는데...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쉬운 경기라고 생각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2년 전에 귄도안의 극장골로 우승했던 경기도 비슷했다. 그 경기를 팬의 입장에서 보면서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하지만 선수로서 그 경기를 뛰면서 느낀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경기 막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QPR과 경쟁하고 있던 볼튼의 강등이 확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갑자기 QPR 벤치에서 모든 선수들이 '이제 됐어, 우리는 살았어'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그때부터 QPR은 침착하게 시간을 끌면서 경기를 마무리하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들은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보냈고 골키퍼는 길게 뻥 차버렸다.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상대 풀백이 이제 잔류했으니까 됐다는 것처럼 뻥 차는 것도 봤다.


아구에로의 골이 터지기 직전에 난 경기장 중앙에 서서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골이 들어갔을 때 난 달려갈 기운도 없었다. 긴장이 탁 풀렸다. 내가 기억하는 건 스코어가 2-2였을 때 에티하드 스타디움 전체가 침묵에 잠겼던 분위기만 기억난다.


-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첫째


첫째가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난 득점하고 임신한 아내를 위한 셀레브레이션을 했다. 어휴, 그때 주말마다 아내가 얼마나 부담을 줬는지 모른다. '다른 남편들은 전부 아내 임신했을 때 기념 셀레브레이션 하던데 당신만 안 할 거야?' 아니, 난 원래 골을 못 넣는다고!


그러다가 결국 사우스햄튼 전에 득점에 성공했고, 난 유니폼 안에 공을 집어넣고 손가락을 빠는 셀레브레이션을 했다. 그때 내가 느낀 해방감이 얼마나 컸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 펩과의 만남


우리는 커피를 마셨고 난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난 이탈리아에서 제안을 받았고 펩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발목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대화는 아주 솔직하게 진행됐다. 펩은 결정은 내 몫이지만 내가 잔류했으면 좋겠고 당장 풀백 영입은 계획에 없다고 했다. 나와 사냐를 로테이션으로 기용할 거고 나처럼 경험이 많고 구단 사람들을 잘 아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펩은 확실하게 말했다. 떠나고 싶으면 억지로 막지 않겠다. 하지만 남아도 50~60경기 출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사냐와 로테이션을 돌릴 거고 출전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을 거면 확실히 헌신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난 32살이라는 내 나이를 고려할 때 어려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펩은 새로운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었고 그러려면 신선한 피가 필요했다. 난 장애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난 고심 끝에 맨시티에서 마지막 1년을 즐겁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했다.


그렇게 펩이 말했던 대로 마지막 시즌은 절반 정도 출전했다. 챔스는 음바페의 모나코에게 탈락했고 리그는 콘테의 첼시가 엄청난 연승 행진을 달렸다. FA컵은 아쉽게도 웸블리에서 패배했다. 마지막에 우승하고 떠나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 맨시티 팬들에게 받은 애정


실바, 데 브라이너, 아구에로 같은 스타 선수들은 그들의 넘치는 재능으로 언제나 팬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구단에 헌신하고 맨체스터의 문화에 동화됐던 선수들이 있다. 난 거리를 걸어다니며 푸드트럭에서 피쉬 앤 칩스를 사먹으면서 팬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물론 난 축구적으로도 꽤 많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300경기 이상 출전했고 여러 번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의 격동기에 여러 모로 기여했고 헌신했다. 


요즘은 워낙 맨시티가 잘나가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맨시티 팬들이 많다. 내가 처음 맨시티에 왔을 때 홍콩, 남아공에서 프리시즌 경기를 가졌던 게 생각난다. 상대가 토트넘 아니면 아스날이었는데, 맨시티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한 10명 정도 있었다.


이번에 맨시티가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그동안 쉼없이 달려온 과거를 고려하면 쉬어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번 시즌을 무관으로 마친다고 해도 실패라고 하는 건 가혹하다고 본다. 최근에 맨시티가 이룬 업적들은 대단히 존중받아야 하기에 이런 시즌도 보낼 수 있는 까방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https://www.relevo.com/futbol/zabaleta-vivio-situ-argentina-evito-20250414141345-nt.html

이이75
2025-04-28 00:21
ㅅㅅ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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